마음을 바꾸는 위인들의 한마디 - 기업의 이익은 사회로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하고, 자식은 사회인으로 남겨야 한다.”
- 유일한 박사
▶ 기업의 사회적 책임 (Social Responsibility)
☞ 기업은 단순히 사주의 소유물이 아니라 고객과 이웃, 국가가 함께 키워낸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인식. 발생한 이익을 다시 공동체에 돌려주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기업을 존재하게 해 준 사회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자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숙명적 의무임을 강조.
▶ 세습 경영의 타파와 전문 경영 (Professional Management)
☞ 자녀를 후계자가 아닌 평범한 '사회인'으로 남기라는 말은 소유와 경영의 엄격한 분리를 뜻함. 혈연에 얽매인 경영권 승계가 기업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실력 있는 인재에게 경영을 맡겨 기업이 영속적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게 하려는 선구적인 결단.
▶ 진정한 자립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 자녀에게 막대한 부를 물려주는 대신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자립심을 유산으로 남김. 이는 부의 대물림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방지하고, 기득권층이 누리는 특권만큼 엄중한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린 것.



유일한 박사(1926~1971)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의 상징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중 한 분입니다.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의 설립자로, 기업의 이익을 개인의 부가 아닌 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돌려준 선구자였습니다.
▶ 이름 : 유일한(柳一韓, Ilhan New)
▶ 출생 : 1895년 1월 15일, 평양
▶ 사망 : 1971년 3월 11일
▶ 직함 : 독립운동가 · 기업가 · 교육자
▶ 대표 업적 : 유한양행 창업자, 윤리적 기업 경영의 상징
1. 유일한 박사의 생애
☞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철학을 삶으로 증명한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교육가
▶ 출생과 어린 시절 (1895~1915)
▪ 1895년 평양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남.
▪ 어린 시절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겪음.
▪ 부친 유기연은 "넓은 세상을 배워 나라를 구하라"
=> 9세 무렵 미국으로 유학 →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해외 유학, 기독교적 가치관과 민주주의 경험.
▶ 미국 유학과 사상 형성 (1915~1926)
▪ 미시간주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 미국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 법치. / 기업의 사회적 책임. / 자본주의의 윤리적 한계를 직접 체득.
▪ 라초이(La Choy) 설립 : 1922년 동기생과 함께 숙주나물 통조림 회사인 '라초이'를 세워 큰 성공을 거둠. 미국 주류 시장에 아시아 식품을 성공적으로 안착.
☞ “자본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 독립운동 투신 :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 자유대회'에서 의장단의 일원으로 활동.
=> 미주 한인 단체에서 독립자금 모금. / 독립운동 홍보. /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실무형 독립운동가로 활동.
▶ 유한양행 설립 (1926) ☞ "병든 동포를 구하겠다"며 1926년 귀국
▪ 1926년, 서울에 유한양행 설립
▪ 설립 원칙 : 정직한 의약품 생산. / 과장 광고 금지. / 직원 복지 우선. / 탈세·로비 배격 ⤑ 당시 한국 사회에선 혁명적인 경영 방식.
▪ 피부병, 결핵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을 저렴하게 보급
☞ “기업은 사주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 → 한국 최초의 윤리경영 선언
▶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 (1930~1945)
▪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한국인 고용 유지. / 친일 행위 거부.
▪ 기업 수익을 독립운동 지원. / 인재 양성. / 교육 사업에 사용
▪ 광복 후에도 정치권력과 거리 유지.
▶ 교육·사회 환원 활동 (1950~1971)
▪ 유한재단 설립 : 장학 사업. / 학술·교육 지원.
▪ 유한공업고등학교 설립 : 실무형 인재 양성.
▪ 평생 검소한 생활 유지 : 자가용 없음. / 소박한 주거.
▶ 마지막 선택 – 상속 포기 (1971)
▪ 1971년 3월 11일 별세
▪ 유언 : 개인 재산과 유한양행 지분 대부분을 사회와 재단에 기증. / 자녀에게 경영권·재산 상속하지 않음.
☞ 한국 기업사에서 전무후무한 결정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2. 유일한 박사의 독립 활동
☞ 무장투쟁이나 영웅적 선언이 아니라, 돈·조직·신뢰로 지속성을 만든 ‘실무형 독립운동’
▶ 독립운동의 출발 배경
▪ 미국 유학 중 3·1운동(1919) 소식 접함.
▪ “감정적 분노보다,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인식.
▪ 미주 한인 사회 : 자금력. / 국제 네트워크. / 언론 접근성을 독립운동에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
▶ 미주 한인 사회에서의 활동
▪ 독립자금 모금 및 관리 : 미주 한인 교포 사회를 조직하여 체계적인 모금 활동. / 일회성 기부가 아닌 정기 후원 구조 구축. / 모금 자금 일부를 직접 관리하며 투명성 중시.
☞ 임시정부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큰돈’이 아니라 꾸준히 들어오는 돈이었음.
▪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 운영비. / 외교 활동 자금. / 독립운동가 생활비 전달 ⤑ 단순 후원이 아니라 연결자·조정자 역할.
▪ 독립운동 외교·홍보 활동 : 미국 사회와 언론을 상대로 일본 식민 지배의 부당성 알림. / 한국 독립의 정당성 설명.
▶ 귀국 후에도 이어진 ‘조용한 독립’
▪ 1926년 귀국 후 유한양행 설립.
▪ 기업 수익 일부 : 독립운동가 지원. / 민족 교육. / 인재 양성에 사용.
▪ 일제의 감시 : 친일 기업과의 결탁 거부. / 일본 자본 종속 최소화.
▶ 광복 이후의 태도
▪ 독립운동 공적을 과시하지 않음. / 보상이나 지위 요구하지 않음.
▪ 독립 후 과제 : 부패 없는 사회. / 정직한 경제. / 책임 있는 시민 양성.
▶ 투쟁의 기록
▪ 맹호군(Tiger Brigade) 활동 : 한인 국방경비대 조직
=> 조직 : 재미 한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산하 한인 국방경비대(일명 맹호군)'에 참여.
=> 역할 : 당시 40대 중반의 성공한 사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과 함께 군사 훈련을 받으며 조국 광복을 위한 실전 준비.
▪ 냅코 작전(NAPKO Project) : 50세의 특수요원 'A'
=> 1945년 미 전략정보처(OSS, CIA의 전신)가 수립한 한국 침투 작전에 자원.
=> 작전 내용 : 한국인 요원들을 잠수함에 태워 국내로 침투시킨 뒤, 정보 수집 및 파괴 공작을 수행하는 위험천만한 작전.
=> 코드네임 'A' : 유일한 박사는 1조의 조장(팀장)으로 선발.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 훈련 과정 : 강도 높은 사격, 폭파, 유도, 무선 통신 훈련을 모두 소화. 성공한 기업가라는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목숨을 건 사지로 뛰어들려 했던 것.
=> 결과 : 작전 실행 직전 일본이 항복하면서 실제 침투는 이뤄지지 않았음.
▪ 필라델피아 한인 자유대회와 외교 활동
=> 제1차 한인 자유대회(1919) : 3·1 운동 소식을 접한 뒤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필라델피아에서 대회를 개최.
=> 결의안 낭독 :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이라는 결의문을 기초하고 낭독하며, 한국이 왜 독립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역설.
▪ 유한양행 설립 자체가 독립운동



3. 유일한 박사의 정치 활동
▶ 정경유착의 거부 : "정치 자금은 단 1원도 줄 수 없다"
▪ 사건의 발단 : 자유당 정권과 이후 공화당 정권의 정치 자금 지원 요청 거부.
☞ "기업의 돈은 사회의 것이지 정치를 위해 쓰일 수 없다"
▪ 보복 세무조사 : 괘씸죄에 걸린 유한양행은 유례없는 강도 높은 세무조사.
▪ 결과 : 단 1원의 세금 탈루도 발견되지 않았음. / 정부는 결국 보복 대신 '동탑산업훈장'과 '모범 납세자상'을 수여.
▶ 권력의 유혹을 뿌리친 '불출마'
▪ 입문 제안 거절 : 여러 정권에서 장관직이나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 / "나는 장사꾼이지 정치가가 아니다"라며 매번 단칼에 거절.
▪ 이유 : 기업인이 정치에 발을 들이는 순간, 기업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특정 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
▶ 국가 정책에 대한 '행동하는 조언'
☞ 기업가로서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
▪ 보건 정책 기여 : 국민 보건 체계를 구축 ⤑ 정부의 보건 행정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
▪ 교육 사업을 통한 미래 투자 : 유한공고, 유한대학교 등을 설립하여 기술 인재를 양성 ⤑ 국가 경제 성장의 근간이 되는 '인적 자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가장 고차원적인 정치적 기여.
▶ 유일한 박사가 받은 유일한 '공직' 성격의 직함
▪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 기업가들의 권익과 경제 발전을 위해 활동.
▪ 보건부 자문위원 : 자신의 전공 분야인 보건 행정 발전을 위해 정책적 조언.



4. 유일한 박사의 기업 활동
▶ 기업관의 출발점
☞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다.”
⤑ 기업은 돈을 버는 조직이기 이전에 사회를 유지하는 공적 장치라는 인식.
▶ 초기 : 미국에서의 성공, 라초이(La Choy) 창업
☞ 한국인 최초로 미국 주류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글로벌 경영인'의 원조
▪ 숙주나물 통조림의 혁명 : 1922년, 대학 동기인 월리스 스미스와 함께 식품 회사 '라초이(La Choy)'를 설립. 동양의 숙주나물을 서양인들이 먹기 편하게 통조림화하여 미국 전역의 식탁에 올림.
▪ 자본 축적과 경영 경험 : 이는 훗날 유한양행 경영의 튼튼한 밑거름이 됨.
▶ 중기 : 유한양행 설립과 제약 주권 확보
☞ 1926년, "병든 동포를 구하겠다"며 귀국하여 유한양행을 설립.
☞ 민족 보건의 기틀 : 대중에게 꼭 필요한 소화제, 결핵 치료제, 피부병 약(안티푸라민) 등을 저렴하게 보급.
☞ 버드나무 로고의 상징성 :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가 도안해 준 버드나무 로고는 "무성한 나무 아래 국민들이 편히 쉴 수 있게 하겠다"는 기업의 정체성.
☞ 전국적 유통망과 광고 혁신 : 신문 광고를 적극 활용하고 전국적인 대리점망을 구축하여, 일본 제약 자본이 독점하던 시장에서 민족 기업의 자존심을 지킴.
▪ 정직 경영 : 과장·허위 광고 금지. / 약효를 부풀리는 관행 철저 배제. / 불량 의약품 생산 거부.
▪ 투명 회계와 법 준수 : 탈세·비자금·로비 관행 거부. / 장부 공개, 합법적 경영 유지. / “법을 피해 가는 것은 능력이 아니다”
▪ 직원은 비용이 아닌 자산 : 안정적 급여 지급. / 복지 제도 도입. / 장기근속 장려.
▪ 학연·혈연 배제 : 친인척 경영 참여 최소화. / 능력 중심 인사. / 사주 일가 특권 철저 차단.
▶ 후기 : 한국 기업의 선진적 모델 제시
☞ '투명 경영'과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
☞ 주식 상장(1962) : 제약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여 자본을 투명하게 관리.
☞ 전문 경영인 제도 도입(1969) :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기업을 망치는 길"
☞ 종업원 지주제 : 사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 주어 "회사의 주인은 사원"이라는 주인의식을 고취시킴.
▪ 이익의 사회 환원 : 교육. / 장학사업. / 사회복지로 환원.
▪ 교육 투자 : 유한재단 설립. / 유한공업고등학교 설립 ⤑ 현장형 기술 인재 양성.
▪ 권력·자본과의 거리두기 : 정치권력과 결탁 거부. / 특혜·인허가 로비 거절. / 단기 이익보다 장기 신뢰 선택.
▪ 마지막 선택 – 소유 포기 (1971) : 유한양행 지분 대부분을 유한재단과 사회에 기증. / 자녀에게 경영권 상속하지 않음.
5. 유일한 박사의 평가
☞ 독립운동가 ⤑ 총보다 자금과 조직으로 싸운 실천가
☞ 기업가 ⤑ 한국형 윤리경영·ESG의 원형
☞ 교육가 ⤑ 인재 양성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신념
☞ 시대의 양심 ⤑ 권력·자본·혈연을 모두 내려놓은 인물
▶ 역사적 평가 : 행동하는 독립운동가
☞ “말이 아니라 제도로, 선언이 아니라 유언으로 철학을 증명한 인물”
▪ 무력 항쟁의 의지 : 50세의 나이에 OSS 냅코 작전에 자원한 행보는 그가 가진 애국심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줌.
▪ 보건 독립 : 약이 없어 죽어 가는 동포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라는 그의 철학은 경제와 복지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독립운동으로 재평가.
▶ 도덕적 평가 : 부끄러움 없는 인간
▪ 유언장의 울림 : 자녀들에게 단 한 푼의 재산도 물려주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게 한 유언은 한국 사회의 부의 세습 문화에 큰 경종을 울림.
▪ 무욕(無慾)의 삶 : 세상을 떠날 때 그가 남긴 유품이 낡은 구두와 옷 몇 벌뿐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추구한 가치가 물질이 아닌 정신에 있었음을 보여줌.
▶ 경제적 평가 : 선구적인 전문 경영 모델
☞ ‘가족 경영' 굴레를 깬 최초의 혁신가로 평가
▪ 소유와 경영의 분리 : 친인척을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실력 있는 전문 경영인에게 자리를 넘긴 결단은 한국 기업사에서 전무후무한 모범 사례.
▪ 정직한 납세의 상징 : "세금은 국가 발전의 기초"라는 신념으로 세무조사조차 감복하게 만든 일화는 기업의 투명성이 곧 가장 강력한 경쟁력임을 증명.
▶ 사회적 평가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 사회 환원의 교과서 : 전 재산을 교육과 보건 사업을 위해 기부.
▪ 인간 존중의 경영 : "사람이 먼저다"라는 신념으로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하고 직원들의 복지를 챙김.
▶ 비판적 성찰까지 포함한 평가
☞ 현실 정치·경제 구조의 한계를 인식한 의식적인 거리 두기를 선택한 인물.

6. 유일한 박사의 어록
▶ 기업과 돈에 대한 어록
▪ “기업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다.” → 유한양행을 특정 가문의 소유가 아닌 사회적 자산으로 본 핵심 철학.
▪ “돈은 벌기보다 쓰는 법이 더 어렵다.” → 축적보다 환원과 책임을 강조한 말.
▪ “정직은 가장 확실한 경영 전략이다.” → 단기 이익보다 신뢰를 중시한 경영관.
▪ "기업의 기능에는 유능하고 성실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 기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곳이어야 함을 강조.
▪ "정직, 이것이 유한의 영원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 → 투명 경영과 정직한 납세가 기업 생존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하신 말씀.
▪ “자식에게 재산을 남기는 것은 그들을 망치는 일일 수 있다.” → 부의 세습보다 자립과 책임을 강조.
▶ 국가와 사회에 대한 어록
▪ “나라의 힘은 건물이나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 교육과 인재 양성을 중시한 신념.
▪ “독립은 외침으로 오지 않고, 준비된 실력으로 온다.” → 감정적 민족주의보다 실력 축적을 강조한 현실적 독립관.
▪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 → 제약업을 시작하며 하신 말씀으로, 민족의 보건이 곧 국력임을 역설.
▪ "나라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 실제로 OSS 특수 작전에 참여하는 등 몸소 애국을 실천하며 보여준 삶의 태도.
▶ 삶과 가치관에 대한 말씀
▪ “나는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다.” → 그의 인생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
▪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가장 큰 이익이 된다.” → 평생 실천으로 증명한 신념.
▪ “눈을 감을 때 내 삶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 →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함을 일깨움.
▪ "너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라." → 아들에게 남긴 유언장 중 일부. 자녀에게 부를 물려주는 대신 자립심을 강조한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가르침.
▪ "사람은 죽으면서 이름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삶의 흔적을 사회의 자양분으로 남겨야 한다."
▶ 교육과 미래에 대한 말씀
▪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 장학사업과 인재 양성의 철학적 근거.
▪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이미 쇠퇴하고 있다.” → 장기적 국가 발전에 대한 경고.
▶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 (요약)
▪ 아들(유일선) : "너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이제부터 너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
▪ 딸(유재라) : "유한공고 안의 묘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준다. 그곳을 유한동산으로 꾸며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게 하라."
▪ 손녀(유일링) : "대학 졸업 시까지의 학자금 1만 달러만 남긴다."
▪ 사회 : "나머지 모든 재산은 '유한재단'에 기부하여 교육 및 사회 복지 사업에 쓰도록 하라."
